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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대안적 사회가 될 수 없다
작성자 bangha
작성일 2015-01-01 (목) 13:37
   
공동체는 대안적 사회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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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사회 내지 사회구성의 대안으로서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동체는 군집생활의 한 유형일 수는 있어도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서 성립되지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공동체라는 것은 운명 집단이든, 이익집단이든 - 초기에 별 탈이 없이 잘 꾸려간다, 자족적 반경의 수준이나 가족적인 공동체의 수준일 때는 잘 별 탈이 없다. 그러나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면 판이 깨진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소위 부족연맹체까지는 공동체적 전통이 유지된다, 그러나 고대국가로 넘어가는 시기에 공동체 질서가 파괴되고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법률적 체제로 변질된다, 이 시기 작은 부락은 약 100호 내외이고 큰 부락은 약 1000호인데, 그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서 촌락공동체가 균열이 생긴다. 그러면서 법률이 등장한다,

예컨대 가야의 부족연맹체나 원삼국시대의 촌락형태 자료를 보면 600호부터 약간씩 변질되기 시작해서 1200백호를 넘어서면 반드시 깨지게 된다, 공동체의 균열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고대 국가적 정벌과 복속이라는 형태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공동체라는 것은 구성원의 결합 가능한 한계치가 있다. 요즘 말로 소통체계, 협력체계로서 기능할 수 있는 임계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점을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화학적인 분자결합도 그런 임계치가 있다. 그 기본 틀은 똑같다.

역사적 공동체라는 것도 그렇게 깨졌다는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생태주의 공동체나 조합주의 공동체라는 것도 그 임계치를 넘지 못한다. 옛날에는 600호가 임계치라면 지금은 600호도 못 되어 깨질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워낙 에고가 강하고 계산이 빨라서 2, 3백호만 되어도 판이 깨질 것이다.

그러니까 공동체는 새로운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된 바다, 지금 보다도 더 풋풋하고 인정이 살아 숨 쉬는 시절, 순박하고 천진무구하던 인간들이 모여도 안 되었던 건데 지금은 더더욱 안 된다는. 이론상으로도 안 되고 실제적으로 안 된다.

 

소위 운명공동체라는 것도 그렇다, 혈연을 기축으로 하는, 이론적으로 보면 존재적 결합(깡마른 의미의 존재적 결합)이 운명공동체인데, 실제 부모 형제간에도 한 생각, 한 뜻으로 의기투합이 안된다. 우리가 익히 보는 바다, 상속문제가 걸리면 머리터지는 싸움을 한다. 그러니 공동체로 묶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명 공동체라는 것도 변질되고 균열되기 마련이다, 거기에서는 사회라는 개념이 도출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 이익집단을 보자, 이게 근대적 사회유형으로 자주 논의되는 것인데, 운명공동체가 존재간의 결합이라면 이익집단은 가치와 가치의 결합방식에 기초한다, 우리가 이익집단을 근대 사회라고 하지만, 또 그걸 문명사회라고 하지만 정말 그것이 사회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일까? 이기적 욕망의 에고(ego)의 집단을 사회라고 한 거지, 사회가 있었던가? 사회성이 없는 에고들의 집단에서 사회가 성립한다는 것이 자기모순이다, 사회성이라는 씨앗이 없는데서 사회가 성립한다는 거니까, 사회성이 없는 에고들의 쪽수가 아무리 많아도 사회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소셜 컴머스소셜 네트워크소셜 앱이라는 소리를 자주 한다, 왜 이런 소리가 나올까? 소셜(social)이 유행할까?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지각하든 지각하지 않는 간에,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사회를 갈망하고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사회를 보고 싶다, 사회가 그립다는 거다.

앞으로의 사회개조는, 사회를 사회답게 뿌리에서부터 구축하는 거는 체계화 이상의 것이 없다. 이 이상의 혁명은 없다. 권력이 바귀고 정책이 바뀐다고 사회가 개조될까? 허황한 헤게모니 쟁탈전에는 희망이 없다

 

* “체계화(socio-connectome)”에 대해서는 앞의 글과 다음의 책을 참고하기 바람/

유상 박병원<체계화 차서>(도서출판 방하. 2011) 참조

 

 

이전 역사를 보아도 그렇지만, 어떤 형태로든 간에 시절의 변화는 혁명과 함께 온다. 앞으로의 시절에 혁명은, 소박하게 이야기하면 사회라는 개념을 우리네들 삶의 현장에 살아있게 하는 거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셜(social)'이 유행어가 되는 것, 그게 뭔가? 사회가 그립다는 거다.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다. 사람은 몸서리가 나고 사람은 지긋지긋하다. 사회가 그립다는 것이다. 결국 이게 생존의 화두다. 이게 사는 자와 죽는 자의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사회가 사회다우면 인간 같은 인간 아니면 그 사회에 살 수 있을까? 사회라는 건, 존재성이 한껏 발현된 알곡들의 모둠인데, 무늬만 사람인 것, 쭉정이 같은 인간은 못 산다, 사회가 아닌 데서야 살 수 있었지만.

근대라는 한 시절이,어떤 의미에서 보게 되면 거짓 인문이 횡행한 시절이었다. 이성과 합리를 이야기하면 할수록 인간이 하는 짓은 점점 야만적이고 야만적인 짓을 하면서 그걸 합리로 포장한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경제논리, 약육강식의 시장논리를 이성적인 진화인 것처럼 기만했다. 우리는 사회 없는 사회 속에서 산거고 우리는 또 그걸 사회인줄 알고 제도도 만들고 정책을 개발하면서 그걸 열심히 치장했다.. 결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막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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